마지막으로 별을 본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무수히 많은 별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강원도 화천의 깊은 숲 속이었는데(간첩 아님) 땅에 드러누워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보니 이상하기도 하지. 설명할 순 없지만 뭔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저 수없이 많은 별들 중 하나는 절대적으로 내 편일 것 같은 기분.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을 들어서였으려나? 무수히 많은 별이 수놓아진 이런 하늘을 언젠가 또다시 보고 싶었지만,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8월 31일-9월 1일 주말에 열린 태백인(이하 태백IN) 행사의 테마는 은하수였다. 끝없이 밤하늘에 펼쳐진 무수한 별들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은하수라니! 인스타에서 본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은하수를 직접 볼 수 있단 생각에 마음이 덩기덕 쿵 더러러러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월요일쯤이었던가.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태백인 주최측의 전화를 받았다. 공식 행사 일정 하루 전인 금요일부터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데, 금요일 야영장이 은하수 명소라는 것..! 일 끝나고 달려간다 해도 9시가 훌쩍 넘는다. 장거리 운전으로 많이 피곤할 게 뻔했지만, 은하수란 말에 홀딱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많은 별들을 다시 볼 수 있다면…! 🔥
금요일에 일이 땡! 끝나자마자 바로 강원도로 갈 수 있도록 급하게 이것 저것 짐을 쌌다. 체력적으론 빠듯할만도 한데, 마음이 즐거워서일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날씨가 이게 무슨 일? 야영지인 통리파크로 가는 내내 하늘이 심상치 않다. 구름이 잔뜩 껴있고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때쯤 지나는 구불구불한 고개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아… 망했네. 왜 하필 오늘 날씨가 이리 안 도와주나😂😂😂 하지만 내일도 있으니까… 하며 오늘 은하수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접었다.
야영지에 도착해 지인들과 즐거운 저녁 자리를 가지다 보니 실망감은 곧 가라앉았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이 껴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지금 즐거우니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등이 되었고, 은하수는 아니지만 구름 사이로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런데 어라...?
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조금씩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깐 잊고 있었다. 아무리 주차장이 꽉 차 있더라도 내게 필요한 건 딱 한 자리이듯, 은하수를 보기 위해 날이 내내 맑을 필요는 없으며, 내게 필요한 건 즐길 수 있는 딱 한 순간이라는 것을. 이 많은 별들이 어릴 때 본 그 별들 그대로라 생각하니 뭔가 더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다. 아마 다음에 은하수를 볼 땐 반가운 기분이 들지 않을까.
다음날인 태백인 본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밤하늘에 구름이 잔뜩 껴서 이거이거 은하수는 커녕 별도 안 보이네... 했지만 새벽이 되자 태백 하늘은 또다시 구름을 걷어내고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여주었다. 빈백에 누워 핸드폰으로 한영애의 '바람'을 들으면서 별을 가만히 보며 느꼈던, 그 벅차고 행복했던 기억은 아마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두고두고 생각이 날 거 같다.
여러분도 별 보러 가실 때 꼭 한번 들어보셨으면 좋겠다.
https://youtu.be/ljb6_c2TIfA?si=fOuzBiW31v9SYt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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